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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 신앙과 실재reality의 신앙

Nomad|2013.02.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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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 믿음과 실재reality의 믿음

-      조용기목사님에 의하면, 기록된 말씀과 선포된말씀.

이 둘을 비교하면 결국 살아있는 믿음은 인격적 관계의 실재reality에있다.

같은 질병을 놓고 어떤 사람은 치유를 받고 어떤 사람은 치유를 받지 못한다. 답은어디에 있는가? 답은 주님의 뜻에 있다. 주님께서 고치길원하시면 고치시고 원하지 않으면 고치지 않으신다. 성도가 예수님께 치유를 강요할 수 없다. 마치 구원을 주님)께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주어지는 결과를 믿음을 받아들일 뿐이다. 다만 의미를 찾아야한다. 의미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말미암는다. 의미는 주님께서그렇게 하신 마음의 뜻이다. 주님의 뜻은 사랑이고 완전하다. 따라서우리는 그 뜻을 깨달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사람들이 기록된 말씀을 읽고 이것을 믿고 행한다. 하지만 거기에 주님과의관계가 없으면 그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아니라 정보다. 우리는 살아있는 말씀과 정보적 지식 차원의말씀을 구별해야 한다.

Ex) 오래전 한국의 염해경이라는 여인이 삼각산에 엄청난 규모의 청년수련회를 가졌습니다. 그녀는 아주 유명한 여 목사였습니다. 그녀가서 있을 때 사람들이 그 앞에 나가면 성령의 능력으로 쓰러졌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능력에 대한 소문을듣고 많은 청년들이 그녀의 집회에 모여들었고, 그녀가 이 청년 수련회를 삼각산에서 열었을 때는 수천명의 청년들이 참가했습니다. 수련회를 하는 동안 비가 억수같이 와서 계곡이 넘쳤습니다. 몇 명의 젊은이들이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계곡을 건너가려고 했지만 그들이 강둑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강물이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다리도 없고 배도 한 척 보이지 않아 그들은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세 명의 소녀들이 모여서 말했습니다. “왜 우리라고저 물위를 걸어서 건너지 못하겠어? 베드로는 물위를 걸었는데! 베드로는믿음으로 물위를 걸었으니 우리도 해낼 수 있어. 우리도 이 강을 건너가야 해.” 강물은 둑까지 넘쳐 흘렀지만 이 세 소녀는 무릎을 꿇고 손을 맞잡고서, 물위를 걸은 베드로 이야기가 담긴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똑같이 믿을 수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곤 그들의 일행들이 보고 있는데서 큰 소리로 외친 후 물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간 즉시 그들은 급류에 휩쓸려 익사했으며 3일 후에그들의 시체는 계곡에서 가까운 해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_ 조용기목사,4차원의 영성

 

로마서 1017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선포된 말씀이란 들려진말씀이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었던 것은 주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선포하신 것이다. 선포하시고 들었다는 것은 예수님과 관계적 정황 안에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과관계가 없는데 그냥 내가 말씀을 의지하여 행하는 것은 신념이다. 신앙은 신념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념과 신앙을 철저히 구별하신다. 아무리 사랑이 많으신하나님이라고 해도 비인격적으로 일을 행하지 않으신다. 비인격적인 것은 곧 사랑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랑 없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위에 있는 세명의자매가 가련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다.

선포된 말씀은 예수님과 인격적 실재 가운데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살아있는 믿음을 준다. 그래서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행하고열매를 맺는데 무력한 이유는 예수님과의 관계의 실재reality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실재를 배우는 것에서 터득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그들은 이해하고 알면 그 실재를 소유한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성경이나 경건서적을 읽고 자신들이 그 reality실재를 소유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재가 없기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과정을 지나면 대부분 합리주의적 회의론자가 된다. 이런 사람은 회의론적 무신론자와 별로 다를 바 없다. 이들은 윤리를매우 중요한 기준이자 덕목으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을 들어 쓰신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오판으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따라서 역사하시며 말씀은 곧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한사람이 정결한 사람이다.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학교 생활을 제법 성실하게 하면서 모범생으로 자란다.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일반적 지식으로 가진다. 이들에게는신앙의 실재가 없다. 신앙의 실재를 가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이들이 주체가 되는 자기 중심성이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자기 중심성이 강한 성향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경험과 이성 그리고 감정의 욕구와다른 것들에 대해서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완고하고 강퍅한 마음이 되고 결국 감춰지고 은밀한죄는 견고한 진이 되어서 이들이 영적인 차원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이고 강력한 장애물이 된다.

 

일어나라. 나가서 만 개의 좌석이 있는 교회를 지으라.’ 하나님께서는 나의마음에 하나님의 믿음을 심어 주셨고, 이에 순종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단지 하나님과 그의 믿음에 대한 지식만을 가지고 출발하였지,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믿음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작했다 해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없을 때에는 응답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록된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분에 대한이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이 항상 개인에게 믿음이 부여된 선포된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체험되어지는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체험이 바로 신앙의 reality실재를 갖는 것이다. 인간에게 체험은 매우 중요하다. 체험하지 않고 사람을 알 수 없다. 사람의 모든 지식은 체험에서 출발한다. 영적인 차원의 지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체험을 통해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것이반드시 외부적인 영향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적인 체험은 보이지 않아도 내부에서 엄청난 파고를 일으키며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포된 말씀기록된 말씀으로부터나옵니다. ‘기록된 말씀은 베데스다의 못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공부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성령께서 감동시키거나 여러분의 특수한 상황에 적용하시는 말씀이 될 때에 기록된 말씀선포된 말씀이 되는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이 선포된 말씀이 된다는 것은 성도가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적용되는데 이것은 순종으로 말미암는다. 따라서적용으로 나타나는 선포된 말씀은 구체적이고 매우 다양하다.

 

인격적 관계의 내용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적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의 매우 중요한 신앙의 뼈대이다. 인격적 리얼리티reality는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주권을하나님께 드릴 때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기다림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하고 깊게 한다. 기다림을 통해서 성도는 주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어떤사람이 주님의 종으로 활발하게 쓰임받을 때 그 쓰임받는 모습은 사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이전 기다리는 시간에 이미 다 이루어진 사실이다. 그가 기다림의 시간을 신실하게 가진 만큼 그가 활동하는 지경이 확정된다. 기다림이길수록 그는 넓은 지경을 기업으로 받는다.

 

목회의 목적은 영혼의 치료이다. 영혼의 치료는 주님만 하실 수 있다. 따라서 목사들은 주님과의 인격적 실재reality를 반드시 견고하게가져야 한다. 얼마나 주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가는 그 사람의 인격적 도량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인격적 도량을 극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능력이라면인격적 도량은 향기라고 말하고 싶다. 목회자들이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매우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제시된다.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말의 위로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생령으로 지으셨다. 따라서하나님께서는 영혼육을 따로 다루지 않으신다. 이것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하나님은 사람은 전인적으로 다루신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체험이 있어야한다. 체험은 바로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의 실재reality이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그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인격적이고도실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단지 종교적인 사회 단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기적을 행하기도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깊은 영성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자기중심성을 탈피하고 신본주의적인 신앙을 고도로 가질 때 가능하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 해결책을 얻는 곳, 그들의 삶 속에 기적을 얻는 곳,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을 얻는 곳뿐만 아니라 생생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먼저 인격적이고도 개별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믿음의 기능이 퇴화된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믿음의 기능이 퇴화된시점에서 신앙의 실재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믿음이 없이 주님과 인격적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한국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체질을 먼저 고쳐야 한다. 즉자기부인을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초신자의 경우 쉽겠지만 기신자의 경우는 거듭남 이상의 수고를 요구한다.

 

두 번째로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 관계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체험들을 가져야 한다. 체험은 자기가 행동해서 취하고 쌓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가지는 것이다. 한국의그리스도인들은 이것에 매우 취약하다. 기다림에 능숙하지 못하다. 기다림을무능으로 실패로 여긴다. 기다림보다 먼저 행동해서 이스마엘과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에 있어서 절대 양보하지 않으신다. 아브라함이 10년을 기다리다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을 더 기다리게 되었다.

 

세 번째로 체질의 변화를 위해서 궁극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신앙, 즉인본주의적인 신앙을 신본주의신앙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혁신이다.성령하나님의 강력한 역사가 아니면 혁신은 인위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2007 again 1907 운동이었다. 성령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날까지기다리는 것이 신본주의이다.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을 말하면 인격적 실재를 강조하고 선포된 말씀을 중요시하면서 성경공부를 부정하거나 부인하는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혹시라도 반지성주의로 나아가서도 안되고 합리주의를 배격하면서합리성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순간 순간 돌다리를 두드려 건너는 마음으로 주님께 묻고 순종하기를 반복하는겸손과 온유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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